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빼앗긴 세대 (문단 편집) == 상세 == 백인과 호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들이 이 강제적인 문명화 교육의 대상이 되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백인들과 접촉한 원주민들이 조만간 '''멸족'''할 것이라는 주장이 심심찮게 퍼졌다고 한다. 실제로 백인과의 접촉 후 이전에 없던 병원균으로 인해 원주민의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이긴 했는데 호주 백인들은 이를 두고 미개한 원주민들이 문명인 백인과 만나면 미개하므로 멸족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 원주민들과 백인들 사이에서 혼혈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호주 사회에서는 이런 혼혈 아이들의 증가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것이 숙명론적 주장과 결합하여 이 백인의 피가 절반 섞인 이 아이들을 멸족해 가는 원주민 가정에서 구출해 그들을 문명인으로 교육시킨 후 백인 사회에 동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등장했다. 1869년 호주에서 통과된 "빅토리아 원주민 보호법"은 이런 생각에 근거해 원주민 가정에서 국가차원에서 혼혈 아이들의 친권을 강제로 박탈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후 여러 원주민 보호법안이나 규약들이 제정됐는데 호주의 각 주 정부들은 이를 근거로 혼혈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갔다. 아이들을 빼앗는 방식은 매우 잔인하였는데 원주민이 임신해 병원에서 출산할 경우 병원 의사는 아이의 혼혈 여부를 파악한 뒤 경찰에 신고해 혼혈 아이를 넘겨주었으며 산모는 아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빼앗겼다. 1935년에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진 한 혼혈 아이는 성장한 후 이렇게 증언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와 숙모, 사촌과 함께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경찰차에 넣었고, 우리를 브룸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침을 뱉기도 했습니다. 10마일(약 16km) 정도를 간후 그들은 엄마를 차에서 내쫓았습니다. 우리는 잡혀가지 않으려 울었고, 나는 우리 엄마의 등을 붙잡고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우리를 끌어 당기고 차안으로 우리를 다시 던졌습니다. 우리 엄마가 울면서 차를 쫓아왔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멀리 내몰았습니다. 우리는 차 뒤에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브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나와 내 사촌을 묶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열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퍼스]]까지 가는 보트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묶여 있었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